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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패션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by 케이 편집장 2026. 10. 7.


브랜드와 트렌드 사이에서 나의 기준을 갖는 일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에서 가져온 이 문장을 패션에 대입해본다. 인간의 욕망을 단번에 관통하는, 날것 같은 말이다. 욕망이 없는 인간도 존재할 수 있을까. 각자의 욕망은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드러난다. 패션은 그 욕망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영역 중 하나다.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패션을 바라보면 새삼 브랜드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옷을 고를 때 그 옷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나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선택으로 검증까지 되었다면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배된다. 때문의 올바른 선택의 순서는 바뀐다. ‘나한테 어울리느냐’보다 ‘다른 사람들이 선택했느냐’가 먼저가 되는 것이다.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선택의 기준은 타인에게 맡긴다. 이 글에서 말하는 패션의 역기능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선택을 돕는 기준이 선택을 대신할 때

패션에 역기능이 있다는 말은 다소 낯설다. 누군가의 추천이나 판매량을 참고하는 일은 분명 효율적이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 이런 기준은 선택의 수고를 덜어준다. 패션의 난이도를 낮춘다는 점에서는 순기능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참고하는 것과 판단을 맡기는 것은 다르다. 내가 원하는 옷보다 누군가가 추천한 옷을, 나에게 맞는 옷보다 많이 팔린 옷을 우선한다면 선택의 기준은 나에게서 멀어진다.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선택이 반드시 나를 위한 선택이 어니라는것을 인지해야한다. 패션은 취향의 영역인 동시에 상업의 영역이다. 우리가 접하는 추천에는 판매하려는 목적만이 섞일 수 있고, 바이럴 마케팅은 가짜를 진짜로 만들기도 하며 상품을 발견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화면에 보이는 반응과 판매량을 모두 자연스럽게 형성된 취향의 결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문제는 추천이나 마케팅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그 안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타인의 선택을 나의 필요와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

옷을 입어보는 일과 후기를 읽는 일

매장에서 옷을 고를 때와 온라인에서 고를 때는 판단에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다. 오프라인에서는 눈앞에 있는 옷을 입어보고 만져볼 수 있다. 비교할 수 있는 상품은 한정적이지만, 적어도 그 옷이 내 몸에 어떻게 놓이는지 직접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가까운 지인의 도움을 받더라도 마지막에는 결국 거울 앞에 선 내가 결정한다. 내 몸과 감각이 선택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온라인에서는 비교의 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모든 상품을 찾아보지는 않더라도, 구매하려는 사이트의 후기는 읽게 된다. 직접 입어보고 만질 수 없는 상황에서 후기는 그 빈자리를 채우는 유용한 대안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선택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언제나 솔직하고 정확하며,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따른다. 작성자의 체형과 취향, 기대했던 용도는 나와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다. 좋은 후기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도 좋은 옷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광고와 판매량은 개인적인 의견을 무시한다. 우연히 본 상품에 좋은 후기가 많고 판매량까지 높다면, 처음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옷도 사고 싶은 옷이 된다. ‘필요해서 찾았다’는 흐름이 ‘많이 선택하니 필요해 보인다’는 흐름으로 바뀌는 것이다. 편리한 쇼핑 환경이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되는 이유다.

트렌드는 어디서 오는가

패션 트렌드라고 하면 먼저 패션쇼와 런웨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어떤 옷을 사고 싶어지는지 살펴보면, 그 과정은 런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추천, 반복해서 등장하는 광고, 플랫폼에서 눈에 띄는 상품, 높은 판매량과 좋은 후기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처음에는 관심 없던 옷도 여러 번 마주치다 보면 익숙해진다. 어느 순간에는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할 것처럼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는 이것을 ‘뇌이징’ 이라 부른다. 또한 소비자가 선택의 배경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어떤 추천이 왜 내 앞에 놓였는지, 얼마나 많은 노출을 거쳐 인기 상품이 됐는지 알지 못한 채 증명된 결과만 보고 판단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는 말은 강하게 작동한다. 각자의 생각과 체형이 다른데도, 모두가 좋다고 하는 옷이라면 나에게도 필요할 것처럼 느껴진다. 값비싼 아이템을 두고는 그 기대가 더욱 커진다. 나의 취향과 관계없이, 그것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나도 한 단계 올라갈 것이라는 착각은 서비스처럼 따라온다.

남의 옷보다 나에게 맞는 옷

가진 것보다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순간은 있다. 패션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영역에서는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슷한 취향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남의 선택이 내 판단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성은 필요하다. 상품을 발견하고 비교하는 일이 쉬워질수록, 사야 할 것 같은 이유는 그만큼 늘어난다. 그 이유가 정망 실제 필요한지 아닌지는 본인만 알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패션을 위해 반드시 많은 옷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옷장이란, 고가의 옷으로 채운 옷장도, 유행하는 상품을 빠짐없이 갖춘 화려한 옷장도 아니다. 가격과 관계없이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알고, 오래되고 낡은 옷으로 가득차 있는 옷장이다. 오래 입었더라도 관리가 잘돼 있고, 내 몸과 생활에 맞춰진 옷은 그 자체로 나를 설명한다. 단정함을 새 옷의 상태에서만 찾을 필요도 없다. 새것이라는 이유보다 자주 입는 이유가 분명한 옷. 남의 욕망을 참고하더라도, 마지막 선택은 그런 옷을 향했으면 한다.